jeone
by 바람의전설
사담후세인





30일 오전 6시(바그다드 ,미 동부시각 오전 10시) 바그다드에서 사형당한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후세인은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도로와 공항 등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수많은 이라크 젊은이들을 교육시켰다. 하지만 그가 부흥시킨 이라크는 계속된 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됐다. 자신이 일으킨 나라를 스스로 망가뜨린 셈이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여전히 일부 국민들에게 이라크의 현대화를 주도한 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후세인의 바트당은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이라크를 재건했다. 석유파동은 산유국 이라크에게 막대한 돈을 안겨주었다. 1970년 8억9600만달러였던 석유 수출액은 1974년 76억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1969년 31세의 나이로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된 후세인은 이라크 경제개발을 주도했다. 집을 짓고 도로를 뚫었으며 공항, 항만을 건설했다. 곳곳에 대학도 세웠다.

후세인은 197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이라크 곳곳에는 후세인의 이름과 '현대 이라크의 건설자 후세인'이라는 슬로건이 내걸렸다.

하지만 경제 개발의 한쪽에는 정치적 탄압이라는 그늘이 공존했다. 바트당 이외의 정치 집단을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이라크 경제 전문가 그라님 해던은 "이라크인들은 정치를 간과했다, 그들은 이곳저곳에 들어선 빌딩만을 보고 ??을 잃었다"고 말했다.

후세인과 바트당은 군대와 경찰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출했다. 군대는 권력의 원천이었다. 1975년 국방비에 지출된 돈은 137억달러였다. 정부지출의 27%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라크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던 후세인을 파멸시킨 건 결국 전쟁이었다. 후세인은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만에 전쟁을 시작했다.

1980년부터 8년간 지속된 이란과의 전쟁으로 이라크 경제는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1988년 이란과의 전쟁을 끝낸 이라크 경제는 외국 노동자들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라크 젊은이들이 군대에 끌려 간 사이 인접 아랍국의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전쟁은 전쟁을 낳았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된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 빚을 탕감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분노한 후세인은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석유를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후 이라크는 1990년, 2003년 두차례에 걸친 미국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급속히 무너졌다. 후세인은 전쟁 패해 후 도피 중 미군에 붙잡혔다.

폐허간 된 이라크가 다시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카이로 알아브람 정치 전략 연구소의 와히드 아벨 메귀드는 "이라크가 후세인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은 이라크에 비극과 폐허만을 남겨놓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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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전설 | 2006/12/31 09:01 | 퍼온글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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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방그로 at 2007/01/01 21:29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도 전쟁은 죽음과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되기에 슬픈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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